영화관에서 본 첫 일본애니, 너의 이름은. 소설 버전으로도 있길래 반가워서 단숨에 읽어냈다. 도쿄에 사는 바쁜 고등학생 타키와 시골에서 상경을 꿈꾸는 소녀 미츠하의 러브 스토리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글로 읽는 “너의 이름은”에서는 영상에서 찾지 못한 감동을 행간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기억이 있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이고, 그런 기억중에서도 소중한 것은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준다. 하루의 일과가 힘들었더라도 옛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와 이야기하면 싹 풀리는 것처럼, 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준다. 현재 우리가 누구인가는 이런 기억들이 정의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타키는 이런 ‘기억’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남긴다.

인간의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 것일까. 뇌의 시냅스 배선 패턴 그 자체일까. 안구나 손가락에도 기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개처럼 형태가 없는, 보이지 않는 정신의 덩어리가 어딘가에 있어서 그것이 기억을 간직하는 것일까. 마음이라든다 정신이라든가 혼이라고 불리는 것들. OS가 들어간 메모리카드처럼 그것은 빼낼 수 있는 것일까.

뇌과학과 인지과학이 발달했지만, 아직 ‘기억’과 ‘영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내고 있지 못한다. 다양한 추측들이 있지만 그 무엇도 다른 의견을 제칠 정도로 타당성이 있다고 보긴 어려워보인다. 그만큼 우리의 ‘기억’은 복잡하며, 단순하게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이 소설에서 감정이 클라이맥스로 치솟는 때는 분지에서 서로 만난 뒤에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되는 시점이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알고 있었던 모든 추억들이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뀐다면 엄청난 충격과 상실감에 빠질 것이다. 그렇기에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를 찾기를 갈망하고 마음 속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런 긴장감은 도쿄 시내에서 서로 만나게 되며 해소된다.

청춘의 순수한 사랑을 이렇게 풀어내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신 신카이 마코토 작가/감독님께 감사를 보낸다. 가을이 되면 도쿄에 찾아가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가로수 아래서 얇은 코트를 입고 거닐고 싶다. 그 또한 소중한 ‘기억’이 되어 내일의 내가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