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부피가 너무 많이 불어나서 한동안은 이북 구독 서비스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이너한 작품들의 경우는 epub 형태로 구할 수 없어서 종이책을 구해야하지만, 웬만한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은 많이 구비되어 있어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yes24의 크레마와 kindle, 밀리의 서재를 사용해보았는데, 국내 책 한정해서는 밀리가 책이 다양하고 편리하게 느껴졌다. 이북 리더기를 주문해놓은게 있는데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설이 길었다! 김초엽 작가님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최근에 공개된 작품인데, 아직 종이책으로는 정칙 출간되지 않아서 밀리의 서재 앱으로만 읽을 수 있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이라 한시간반 정도면 다 읽어낼 수 있었다. 쉽게 읽히는 내용에 비해서 마음 속에서 느껴지는 점들을 구체화하기는 정말 어려운 책이었다. 인체개조를 주제로 한 SF소설이었는데, 다른 작품과 다르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차용해서 더욱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주인공은 갑자기 말도 없이 멀리 떠나는데 뒷정리를 부탁한 언니에게 편지를 통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자기 스스로의 겉모습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다는 이상향을 가지고 있고, 더 개선시키고 싶어한다. 미모를 가꾸기 위해서 성형 수술을 받기도 하고, 간혹 성 정체성이 본인의 신체와 일치하지 않으면 생식 기관에 변화를 가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본인이 펭귄이나 곰 같은 동물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피부까지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치거나 노후화된 장기를 교체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 ‘인체개조’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본인의 신체니까 개조하는 것도 본인의 마음에 달린 것이며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합당해 보이지만, 그런 시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다. (왜 그리도 사람들은 남에게 참견하길 좋아하는지…) 물론 원래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기에 심적 거부감을 어쩔 수 없다고 차치하더라도, 남도 아닌 본인의 몸에 변화를 가하는 것을 막는 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사람들의 피부를 개조해주는 가게, 솜솜 피부관리숍에는 다양한 요구를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는데, 수브다니의 경우 받아들이기 힘든 부탁을 한다. 보통 ‘피부 본질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인조 피부를 이식하고 싶어해서 이 가게를 찾지만, 수브다니의 경우 그런 기본적인 요소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금속’ 피부를 가지고 싶어한다. ‘금속처럼 보이는’ 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완전한 ‘금속 그 자체’가 겉을 감싸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장님은 ‘그건 24시간 벗지 못하는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라며 만류하지만, 수브다니는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요구와 거절이 반복되다가 결국 사장님은 수브다니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소설이 끝난 뒤에도 의문이 든다. 수브다니는 ‘기계성’을 가지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금속성’을 가지고 싶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는 나이가 들어갊에 따라 서서히 삶의 기운을 잃어가는 ‘인간의 순리’를 따르고 싶었던 것일까? 주인공은 수브다니가 이루고자 했던 예술적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 수브다니 본인도 예술 작품이 일부가 되었다고 해석하는데, 그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베일에 쌓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생을 갖는 휴머노이드와 삶의 한계를 가진 인간의 차이에 집중해서 그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한다. 수브다니가 함께 협업하고 연인 관계이기도 했던 인간 예술가가 죽으면서 그는 그와 인간의 차이를 몸소 인식하게 되었고, 영생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서 방황했던 것이 아닐까? 인생도, 계절도 결국에는 끝이 나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인데, 무한한 삶을 갖게 된다면 그 소중함이 희미해질 것이다. 수브다니가 그런 인생의 한계를 직접 느끼기 위해서 잘 녹스는 금속을 피부에 이식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칭하지만, 결국에 인생은 종점이 있다. 인생의 길 위에는 기쁜 순간들과 슬픈 순간들이 존재하는데, 각 순간들이 끝이 있기에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기쁜 순간을 더욱 즐기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런 기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까? 우리가 다시 원자로 분해되어도 행복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영원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