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인 요소들이 풍부한 테드 킴의 SF소설. 여러 단편들이 모여 있어서 조금씩 시간을 내어 읽기에 좋았다. 맨 마지막에 각 작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후기가 등장하는데, 스스로 작품을 이해해본 뒤에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자.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연금술사의 문’을 매개로 한 시간여행물. 단, 문을 만들기 이전의 과거로는 가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문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연금술사는 과거에 가고 싶어하는 한 방랑자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과거나 미래로 가더라도 정해진 현실은 뒤바꿀 수 없으며, 자신이 한 행동은 궁극적으론 큰 흐름 속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알라 신의 섭리, 혹은 이 평행세계에서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거스를 수 없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작가는 ‘운명’이라는 개념을 믿는 듯하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으며, 때로는 그 과거를 바꾸거나 지워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후회와 반성의 기억들이 인생의 거름이 되어 더욱 성장하도록 원동력이 된다. 만일 과거를 정말 바꿀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는 나와는 달라질 것이다.
아픔을 승화시켜 발전하는 생물, 그건 바로 인간.
숨 Exhalation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숨: Exhalation.
(p. 86) 그러나 문득 궁금해진다. 혹시 당신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운명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그러리라 상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평형 상태를 향해 나아가려는 경향은 비단 우리 우주만의 특징이 아니라 모든 우주에 내재된 특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실효과는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온기를 주는 동시에 과한 열 집중으로 기후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지구라는 생태계는 하나의 평형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개체라고 볼 수 있다.
온실효과를 줄이기 위해서 간접적으로 환경오염에 대한 제도를 설립하고, 직접적으로는 CO2 저장이나 온도를 낮추기 위한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다. 일부는 빙하기와 해빙기라는 큰 사이클 속 우리가 있다는 낙관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겪는 기후 변화는 현실이니까…
짤막한 소설이지만 울림이 매우 강했던 작품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매우 짧은 초 단편 SF소설(?)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라는 짧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 이 우주가 결정론적이고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택은 그 의미가 사라진다. 우리가 게임 속 NPC처럼 정해진대로 살아간다면,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증에 걸릴 것이다.
소설속에서는 결정론적 미래의 증거인 ‘예측기’가 등장하는데, 가지고 노는 사람들은 무동무언증에 빠져 자유의지가 사라진 상태처럼 보이게 된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에서도 그랬듯이 테드 창은 ‘운명론’이라는 큰 기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듯 하다ㅏ.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p.301) 만약 모든 사람이 모든 사건을 기억한다면, 개개인 사이의 차이 또한 깎여나가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자아상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방법카메라가 기록한 무편집 영상이 영화가 될 수 없듯이, 완벽한 기억이 절로 이야기가 되지는 못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기억은 모든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저장된다. 그러한 편집 과정에서 일부 날조가 발생하기도 하고 사실과 다른 기억을 믿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걸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모두가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상에는 “개인”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우리는 집단지성의 부속물(=ancillaries)에 불과하게 된다.
거대한 침묵
(p.336) 우주는 워낙 광활하므로 지능을 가진 생명체는 틀림없이 여러 차례 발생했을 것이다. 게다가 우주는 워낙 오래되었으므로 설령 기술을 개발한 종이 하나뿐이라고 해도 뻗어나가 은하계를 가득 채울 시간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를 제외한 우주 그 어디에도 생명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우리가 그런 외계 생명체의 신호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들에게 다가갔을 땐 이미 멸종하고 난 뒤일 가능성이 높다. 서로가 존재하리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탐색하고 있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하는 사실 참 아이러니다.
옴팔로스
개인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작품. 과학과 종교의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종교인의 과학 활동 행위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고고학을 통해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주인공은 신의 존재를 믿지만, 인간이 이 세상에 처음 탄생했을 때 신의 의도가 있었는지에 의문을 갖는다. 모든 고통은 시련에 불과하며 결국 신의 큰 뜻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는 힘든 시간들일 뿐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다.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감히 함부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애매한 결론을 내리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해가 안된 작품이라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ㅜㅜ)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인생은 선택의 연속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삶은 여려 매개변수들이 만들어내는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만일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후회를 하곤 하는데,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의 세계를 흔히 “평행우주”라고 말한다. 만일 이런 평행우주 속 나와 연결해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작품에서는 프리즘 혹은 수정구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매개체인데 흥미로운 고찰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연구용으로 발명되었던 프리즘.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비용이 감소하며 일반인들에게도 사용 가능한 물건이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수정구를 통해서 또 다른 나와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얻기도 하고, 다른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현재 나보다 더 잘나가는 평행우주 속 나의 모습을 보며 질투심을 느끼고 자기파멸의 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
만일 후회하는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면 나의 삶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까? 이 작가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납니다.” 또 하나의 미래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p.406) 당신이 앤드루의 청혼을 거절한 건 변덕이 아니라 뿌리 깊은 감정에 기인한 결정이었을 가능성도 있어요
(p.491) 만약 당신이 이곳과는 다르게 행동한 평형세계들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당신이 아니에요.
“나비효과”처럼 아주 작은 초기 설정의 차이가 처음에는 미미해보이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그 차이는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생각.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미래 버전들이 존재하지만 큰 줄기는 그대로 이어진다는 생각. 두 생각이 공존하기에 서로 모순되는 것 같으면서도 무엇이 옳은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책이다.